보유한 회사가 똑같은데, 왜 고르라고 할까?
미국 대표 지수를 따라가는 상품은 국내에만 10개가 넘는다. 미국에 상장된 것까지 세면 더 늘어난다.
이들이 보유한 회사는 사실상 같다. 같은 지수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목록을 나란히 놓고 보면 순서까지 비슷하다.
그런데도 상품마다 차이가 있다. 지수가 정하지 않는 조건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보유 종목이 같은데 무엇이 다른지 아래에서 하나씩 짚어 본다.
S&P 500 은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거를까?
이름의 500은 종목 수다. 미국 증시에서 대표가 될 만한 회사 500곳을 모아 둔 지수다.
후보는 미국에 상장된 회사다. 여기에 조건이 붙는다.
- 일정 규모 이상일 것
- 흑자를 낼 것 — 가장 최근 분기가 흑자여야 하고, 최근 4개 분기를 합쳐도 흑자여야 한다
- 거래가 충분히 이루어질 것
- 시장에서 실제로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의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을 것
흑자 요건이 이 지수의 성격을 많이 만든다.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는 아무리 커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크게 성장하는 회사가 뒤늦게 들어오는 일이 생긴다. 한창 오른 뒤에야 조건을 채우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너무 늦게 들어온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반대편에서는 이익이 없는 회사를 걸러 주는 장치라고 본다.
어느 쪽이든 그 요건이 있다는 사실은 같다. 「미국 시장 전체」가 아니라 「조건을 통과한 500종목」이라는 뜻이다.
조건을 다 채워도 자동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마지막은 지수를 만든 곳의 위원회가 정한다.
업종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보거나 지배구조를 따지기도 한다.
요건을 다 채워도 위원회가 넣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한다.
비중은 회사 크기대로 준다. 다만 창업자나 정부가 쥐고 있어 시장에 나오지 않는 주식은 빼고 센다.
여기까지가 지수가 정하는 몫이다. 어느 회사를 보유할지, 얼마씩 보유할지는 이 규칙이 다 정해 놓았다.
남은 것은 그 지수를 어떤 「그릇」으로 만들어 내놓느냐다.
이 글에서 「그릇」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품의 법적 형태와 파는 조건을 묶은 말이다.
지수가 내용물을 정하고, 그릇이 그 내용물을 어떻게 쥐고 있을지를 정한다.
SPY — 가장 먼저 나온 그릇
미국 증시에 처음 자리 잡은 상품이다. 오래된 만큼 그릇의 모양도 그 시절 것이다.
이 상품은 법적으로 신탁이다. 규칙상 보유한 회사에서 받은 배당을 곧바로 되돌려 넣지 못한다.
받은 배당은 현금으로 따로 보관했다가 정해진 날에 내보낸다.
보관하는 동안 그 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자도 붙지 않는다.
배당이 들어온 날부터 나가는 날까지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받은 배당이 잠시 멈춰 있는 구조다. 액수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같은 구조 때문에 이 상품은 보유 주식을 빌려주는 일도 제한된다. 다른 상품들은 그것으로 비용의 일부를 메운다.
배당을 바로 재투자하거나 주식을 빌려 주지는 못한다. 대신 미국 증시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상품이라 오래 굴러온 이력이 있다.
오래된 만큼 사고파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사려는 값과 팔려는 값의 간격이 좁은 편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이 차이의 무게가 달라진다. 오래 보유한다면 배당이 멈춰 있는 시간이 걸리고, 자주 사고판다면 매수·매도 가격의 간격이 더 중요하다.
같은 상품의 장단점도 보유 방식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VOO와 IVV — 다른 법적 구조로 만든 상품
두 상품은 같은 지수를 같은 방식으로 따라간다. 법적 구조만 SPY와 다르다.
법적으로 일반 펀드에 가까운 구조다. 그래서 받은 배당을 되돌려 넣을 수 있다 — 못 하게 막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보유 주식을 빌려주는 것도 막혀 있지 않다.
둘 사이의 차이는 SPY와의 차이보다 작다. 다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 지수를 따라갈 때 500종목을 모두 사기도 하고 일부 종목만 골라 대신하기도 한다.
VOO와 IVV의 차이보다 이들과 SPY의 구조 차이가 더 크다.
다만 셋 다 달러로 사고파는 상품이다. 해외 주식을 살 수 있는 계좌가 있어야 하고, 환전이 앞에 붙는다.
국내 상장 상품 — 원화로 바로 산다
같은 지수를 따라가면서 국내 증시에 올라온 상품들이다. 원화로 사고판다.
운용사마다 하나씩 내놓아 10개가 넘는다. 지수가 같으므로 보유한 회사와 비중은 사실상 같다.
이름 앞의 브랜드만 다르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여기서 짚어 둘 것이 환율이다. 흔히 「국내 상장분은 환율이 붙고 미국 것은 안 붙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을 사든 원화로 재는 내 자산은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다른 것은 언제 어디서 환전하느냐다.
숫자로 한 번 따라가 보면 이렇다. 지수가 하루 동안 제자리였는데 원화가 그날 조금 강해졌다고 하자.
국내 상장분은 원화 값이 그만큼 내려간다. 미국에 상장된 것을 달러로 샀다면 화면의 달러 값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원화로 바꾸면 역시 줄어 있다.
둘 다 같은 일을 겪었는데 한쪽은 계좌에 바로 보이고 한쪽은 환전할 때 보인다. 보이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환율은 어느 쪽을 사든 따라온다. 막아 두지 않는 한 그렇다.
국내 상장분이 가져가는 것은 계좌를 따로 만들고 환전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환노출 자체는 미국에 상장된 것과 다르지 않다.
분배금을 바로 내보내는지 한동안 쌓아 두는지도 이름 뒤 표시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미국 지수를 따라가는 상품은 한 해에 한 번 이상 내보내게 되어 있어, 아예 안 받는 구조는 아니다.
그래도 자주 나가지 않는 만큼 나갔다가 다시 넣는 과정이 줄어든다.
이름 뒤에 (H)가 붙은 것들
환율의 영향을 막아 둔 상품이다. 막아 두면 지수가 움직인 만큼만 값이 따라간다.
원화가 강해져도 값이 깎이지 않는다. 대신 원화가 약해질 때 얻던 몫도 없다.
막는 일에는 값이 든다. 환율을 고정해 두는 계약을 계속 새로 맺어야 하고, 그 비용이 상품 안에서 나간다.
두 나라의 금리 차이에 따라 그 비용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환율을 막아 둔다는 것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바꾸는 것이다.
원화가 약해질 때의 몫을 내주고 지수만 따라가는 단순함을 가져간다.
바로 위 상품과 정확히 반대다.
같은 500종목인데 비중만 다른 것
보유하는 회사는 똑같이 500곳인데 비중을 모두 같게 주는 상품이 있다. 이름에 「동일가중」이 붙는다.
앞의 상품들은 큰 회사가 더 큰 비중을 가진다. 위쪽 몇 곳이 전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동일가중은 500종목이 모두 500분의 1이다.
목록은 같은데 값이 다르게 움직인다. 큰 회사들이 끌고 가는 장에서는 뒤처지고, 작은 회사들이 오르는 장에서는 앞선다.
비중이 다르면 목록이 같아도 다른 상품이다. 엄밀히는 다른 지수를 따라간다.
비중을 같게 유지하려면 오른 것을 팔고 내린 것을 사는 일을 정해진 때마다 해야 한다.
그냥 두면 오른 회사의 몫이 저절로 커져서 「동일가중」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 손질이 비용으로 남는다. 앞의 상품들은 값이 오르면 비중도 같이 커지므로 손댈 일이 적다.
손대지 않아도 되는 단순함이 사라지는 대신 몇몇 큰 회사에 쏠리지 않는 구성이 남는다.
그래서 무엇이 갈렸을까?
지수는 하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차이는 모두 지수가 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생겼다.
- 배당을 바로 되돌리는가 → 그릇의 법적 형태
- 환율이 실리는가 → 어느 통화로 사는가 · (H)가 붙었는가
- 분배금이 나오는가 → 내보내는가 쌓는가
- 큰 회사가 더 큰 비중인가 → 같은 목록이라도 다른 지수
4줄 중 어느 것도 「어느 상품이 더 좋은가」로 답할 수 없다. 넷 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가져가는지가 갈릴 뿐이다.
상품 페이지에서 기초지수 이름을 확인했다면 절반을 본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름 뒤에 붙은 표시와 분배 방식에 있다.
여기서부터는 내 생각이다
시장 전체를 따라가는 상품은 내 성향에 잘 맞지는 않는다.
내가 투자에서 보고 싶은 것은 받는 돈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흐름이다. 대표 지수를 따라가는 상품은 그 흐름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쪽에 가깝고, 나는 그 기다림을 잘 견디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자산의 일부는 여기에 둔다. 이유는 하나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은 따라가 줄 자리가 하나 있어야 한다.
내 방식대로 고른 것들만 갖고 있으면 내 판단이 틀렸을 때 기댈 곳이 없다.
대표 지수는 내 판단이 들어가지 않는 자리라서 그 역할을 한다.
다만 이것이 옳은 배분이라고는 못 하겠다. 얼마를 두어야 적당한지 나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르게 나누는 사람도 많고, 그쪽이 틀렸다고 볼 근거도 없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이 자리를 둔 뒤로 나머지를 고를 때 덜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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