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수를 따라간다는데, 상품은 왜 이렇게 많을까?
증권사 앱에서 미국 대표 지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상품이 줄줄이 나온다.
앞에 붙은 브랜드만 다르고 뒤는 똑같다. 무엇을 보고 하나를 고르라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반대 경우도 있다. 이름이 거의 같은데 보유한 회사가 전혀 다른 상품들이다.
둘 다 「고배당」이 붙어 있는데 목록을 열어 보면 겹치는 회사가 몇 개 없다.
앞쪽은 고를 근거가 없어서 막히고, 뒤쪽은 이름만 믿었다가 다른 것을 사게 된다.
두 가지는 사실 한 문제다. 이름이 알려 주는 범위를 넘겨짚은 것이다.
이름이 같으면 같은 상품이라고 읽고, 이름이 다르면 다른 상품이라고 읽은 셈인데 둘 다 맞지 않는다.
상품 하나를 처음 만났을 때 어디부터 어떤 순서로 확인하면 되는지 살펴보자.
이름은 어디까지 알려 줄까?
ETF(Exchange-Traded Fund, 상장지수펀드) 이름은 대개 3개 도막으로 되어 있다.
앞은 만든 회사의 브랜드, 가운데는 무엇을 따라가는지, 뒤는 전략 표시다.
가운데 도막까지는 이름이 제 일을 한다. 미국 대표 지수를 따라가는지 국내 주식을 보는지는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뒤쪽 전략 표시다. 「고배당」·「배당성장」·「퀄리티」 같은 말은 범주를 가리킬 뿐 기준을 알려 주지 않는다.
같은 「고배당」이라도 어떤 회사를 고른 것인지는 이름 밖에 있다.
이름은 짐작까지 시켜 준다. 확인은 다른 곳에서 한다.
그래서 확인은 구성 종목 목록으로 한다. 목록을 열면 그 상품이 실제로 무엇을 보유하는지 나온다.
다만 목록은 결과다. 그 목록을 만든 규칙이 따로 있고, 규칙을 보면 앞으로 무엇이 들어오고 나갈지까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을 보유할지는 누가 정할까?
상품이 정하지 않는다. 지수가 정한다.
ETF가 따라가는 지수를 기초지수라고 한다. 그 상품이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미리 정해 둔 기준이다.
운용사는 그 기준을 따라갈 뿐 종목을 임의로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기초지수를 쓰는 상품들은 보유한 회사가 사실상 같다.
브랜드가 5개든 10개든 목록은 거의 겹친다.
무엇을 보유할지는 상품이 아니라 지수가 정한다.
그렇다면 같은 지수를 쓰는 상품끼리는 무엇이 다를까. 비용과 지수를 따라가는 방법이다.
비용은 이때 비교한다. 같은 지수를 쓰는 상품끼리만 견줘야 한다.
지수가 다르면 비용을 견주는 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다른 것을 보유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지수는 무엇을 정해 두고 있을까?
지수를 만든 곳은 산출 방법을 문서로 공개한다. 길지만 뼈대는 세 가지다.
- 어디서 고르나 → 후보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 무엇을 거르나 → 후보 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뺄 것인가
- 비중을 어떻게 주나 → 남은 것에 얼마씩 나눠 줄 것인가
배당을 기준으로 삼는 지수도 만드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 후보를 미국에 상장된 주식 전체로 볼 수도 있고, 대표 지수에 든 500종목으로 좁힐 수도 있다
- 배당을 준 회사만 남길 수도 있고, 10년 연속으로 준 회사만 남길 수도 있다
- 비중을 회사 크기대로 줄 수도 있고, 모두 같은 비율로 줄 수도 있고, 배당을 많이 주는 순서로 줄 수도 있다
세 가지 중 하나만 달라도 목록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름에 똑같이 「배당」이 붙어 있어도 보유한 회사는 달라진다.
고르는 방식이 다르면, 같은 이름을 달아도 다른 상품이다.
셋 중에서는 거르는 조건이 성격을 가장 많이 바꾼다.
지금 배당을 많이 주는 회사를 남기는 것과, 오래 끊지 않고 준 회사를 남기는 것은 전혀 다른 목록을 만든다.
앞쪽은 값이 떨어져서 배당 비율이 커진 회사까지 들어온다. 뒤쪽은 그런 회사가 걸러지는 대신 지금 받는 몫이 작아진다.
어느 쪽이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르는 조건이 곧 그 상품의 성격이라는 뜻이다.
비중은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실제로는 목록보다 크게 작용한다.
100종목을 모두 같은 비율로 나눠 두면 한 종목이 백분의 일이다. 어느 하나가 흔들려도 전체는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회사 크기대로 나누면 위쪽 몇 종목이 전체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
목록은 똑같이 100종목인데, 값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위쪽 몇 개뿐인 상품이 된다.
「100종목에 나눠 두었다」는 말만으로는 얼마나 나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산출 방법 문서에는 한 종목이 넘을 수 없는 상한이나 한 업종이 넘을 수 없는 상한이 적혀 있기도 하다.
그 상한이 있는지 없는지가 같은 목록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지수가 같아도 상품은 달라질까?
있다. 지수를 정한 다음에는 그것을 어떻게 따라가느냐가 남는다.
- 주식을 실제로 사서 보유하는가, 아니면 계약으로 대신하는가
- 환율의 영향을 막아 뒀는가
- 분배금을 언제 주는가
실제로 사서 보유하는 상품은 목록이 그대로 자산이다. 계약으로 대신하는 상품은 상대가 지수 수익을 넘겨주기로 약속한 구조다.
이름 뒤에 「합성」이 붙으면 계약으로 대신하는 상품이다.
환율을 막아 둔 상품은 이름 끝에 「(H)」가 붙는다. 정해진 비율만큼 맞춰 두는 방식이라 흔들림이 줄어들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신 원화가 약해질 때 얻던 몫도 함께 사라진다.
같은 지수도 어떤 방법으로 따라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분배 주기도 여기 속한다. 같은 지수를 쓰면서 한쪽은 분기마다, 다른 쪽은 달마다 주는 일이 있다.
주기는 언제 받느냐를 정할 뿐 한 해치 몫을 정하지는 않는다. 얼마를 내보낼지는 상품이 따로 정해 두므로 주기만으로 견줄 수 없다.
분배금을 내보내지 않고 상품 안에 쌓아 두는 형태도 있다. 다만 해외 지수를 따라가는 상품은 한 해에 한 번 이상 내보내게 되어 있다 — 「받는 날이 아예 없는」 형태는 국내 주식을 보유하는 쪽에 남아 있다.
이 셋이 지수와 별개인 이유는 간단하다. 지수는 무엇을 보유할지만 정하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 내놓을지는 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품 페이지에서 기초지수 이름만 확인하고 멈추면 절반만 본 것이 된다.
이름이 같은 지수를 쓰는 두 상품이 환헤지 여부만으로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넷을 합치면 무엇이 보일까?
지수가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거르고, 비중을 어떻게 주고, 그것을 어떻게 따라가는가.
넷이 모이면 그 상품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가져가는 설계인지가 드러난다.
10년 연속 배당한 회사만 남기는 지수를 예로 들면 이렇다.
조건을 통과하는 회사가 확 줄어든다. 이제 막 배당을 시작한 회사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들어오지 못한다.
새로 자라는 회사는 놓칠 수 있지만, 대신 오랫동안 배당을 끊지 않은 회사만 남는다.
그 교환을 받아들일지는 읽는 사람이 정할 몫이다.
모든 상품은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가져간다.
비중 쪽에도 같은 교환이 있다. 모두 같은 비율로 나눈 상품은 작은 회사의 사정까지 값에 실린다.
큰 회사를 더 많이 가져가는 상품은 그 반대다. 흔들림은 줄지만 시장 전체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여기서도 한쪽이 옳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덜 겪는 대신 무엇을 덜 가져가는지가 갈릴 뿐이다.
이런 대가를 보지 않으면 비교가 「어느 쪽이 더 좋은가」로 흐른다.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면 질문이 바뀐다. 그 교환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로.
그래서 어디를 열어 봐야 할까?
확인하는 곳이 두 군데다.
- 구성 종목 목록 → 운용사의 상품 페이지. 지금 무엇을 보유하는지가 나온다
- 산출 방법 문서 → 지수를 만든 곳. 그 목록을 만든 규칙이 나온다
운용사 페이지에는 기초지수의 이름도 함께 적혀 있다. 그 이름으로 검색하면 산출 방법 문서에 닿는다.
구성 종목은 결과다. 그 결과를 만든 규칙은 지수를 만든 곳에 있다.
산출 방법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후보를 어디서 잡는지, 무엇으로 거르는지, 비중을 어떻게 주는지. 이 세 대목만 찾으면 된다.
문서가 영어로만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운용사 페이지의 상품 설명이 그 내용을 요약해 두기도 한다.
요약본과 원문이 어긋나면 원문 쪽이 맞다. 지수를 만든 곳이 규칙을 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앞으로 이 지수가 어떻게 될지는 문서에 없다.
규칙이 알려 주는 것은 무엇이 들어오고 나가는지까지이고, 그 결과가 어떨지는 다른 이야기다.
지금 보유한 상품 하나를 골라 그 세 대목을 찾아보면, 그 상품을 왜 갖고 있는지가 한 번 정리된다.
여기서부터는 내 생각이다
나는 이름표를 거의 보지 않는다. 거르는 조건부터 찾는다.
상품을 고르다 몇 번 헛짚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이름이 같은 범주를 가리키길래 비슷한 것인 줄 알았는데, 목록을 열어 보면 겹치는 회사가 얼마 없었다.
반대 경험도 있었다. 시장에서 부르는 이름과 지수가 실제로 쓰는 기준이 어긋나 있는 상품이었다.
이름으로 묶어 두고 있었으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이름표가 아니라 거르는 방식을 본다.
다만 이 습관이 늘 맞는다고는 못 하겠다. 산출 방법 문서를 읽는다고 해서 앞으로의 성과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르는 조건이 촘촘하다고 결과가 좋다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의 성과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무엇을 샀는지는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값이 흔들릴 때 판단이 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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