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서 사 뒀는데, 왜 빠지는 날은 다 같이 빠질까?
한동안 나는 분산이 됐다고 믿고 있었다. ETF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업종도 달랐고 대상 국가도 달랐다. 한 상품에 몰아두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장이 크게 빠지는 날을 만났다.
계좌를 열었더니 줄이 전부 파란색이었다. 어느 것 하나 버텨 준 것이 없었다.
폭도 비슷했다. 하나가 크게 빠지고 하나가 조금 빠진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비슷하게 빠졌다.
나눠 뒀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나도 다른 방향으로 안 갔을까?
목록을 다시 보고 알았다. 이름은 다 달랐지만 종류는 하나였다.
전부 주식이었다. 나는 종목을 나눴을 뿐 자산의 종류는 나누지 않고 있었다.
종목을 나눈 것도 「분산」이 맞기는 하다. 다만 한 겹뿐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금이나 채권 같은 것을 찾아보게 됐다. 주식이 아닌 것을 둘 자리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진정한「포트폴리오」의 시작이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주식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왜 섞는지에 대해서다.
「다르게 움직인다」는 무슨 뜻일까?
처음에 나는 이 말을 반대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읽었다.
주식이 내리는 날에 오르는 것이 있으면 계좌가 버텨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산은 흔치 않다. 늘 반대로 가 주는 것이 있다면 애초에 값이 그렇게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쓰는 말은 조금 다르다. 같은 소식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뜻에 가깝다.
어떤 소식에는 같이 오르고, 어떤 소식에는 한쪽만 움직이고, 어떤 소식에는 방향이 갈린다.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은 따로 움직인다는 뜻이지, 반대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이 한 줄을 굳이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조금 뒤에 이 셋을 섞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섞어 두면 빠지는 날이 없어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짚어 두면 이렇다.
- 반대로 움직인다 → 「주식이 내릴 때 오르는가」
- 따로 움직인다 → 「주식과 상관없이 제 사정으로 움직이는가」
금도 원자재도 채권도 뒤쪽이다. 주식이 빠지는 날 같이 빠질 수도 있다.
다만 같이 빠지는 이유가 다르고, 회복되는 시점도 다르다.
그러니 섞어 둔다고 빠지는 날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여러 줄이 한꺼번에 같은 폭으로 빠지는 일이 줄어들 뿐이다. 나는 이 차이를 한참 뒤에 알았다.
금은 무엇을 보고 움직일까?
금에는 다른 자산에 없는 성질이 하나 있다.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회사처럼 이익을 내지도 않고, 채권처럼 이자를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금을 보유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값의 변화뿐이다.
보유하는 동안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계산이 단순해진다.
금은 벌어 주지 않는다. 값이 오르는 것 말고는 나오는 것이 없다.
나오는 것이 없다고 나가는 것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상품을 운용하는 데 드는 총보수는 금 상품에도 똑같이 붙어서 자산에서 조금씩 빠져나간다.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한 상품은 배당이나 이자가 들어와 그 자리를 일부라도 메운다. 금에는 메울 것이 없다.
그래서 금값만 놓고 보면, 한 해 내내 제자리였을 때 내 몫은 본전이 아니라 그만큼 줄어 있다.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는 성질의 값을 여기서 치르는 셈이다.
사람들이 금을 찾는 때는 대체로 비슷하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시기, 돈의 값이 흔들린다고 느끼는 시기다. 회사의 사정과는 다른 쪽을 보고 움직인다.
어느 회사의 사정에도 딸려 있지 않다는 점이 그런 시기에 자리를 만들어 준다.
이자를 주는 자산의 이자가 높아지면 금은 불리해진다. 가만히 두면 이자가 붙는 쪽과 견주게 되기 때문이다.
금을 「안전자산」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주 본다.
다만 그 말이 값에 변동성이 낮다는 뜻은 아니다. 금값도 크게 오르내리고, 몇 년씩 지지부진한 구간도 있다.
국내에서 사는 금 상품에는 환율도 함께 걸린다.
금값이 올라도 원화가 강해지면 내 계좌에서는 그만큼 상쇄된다. 두 가지가 겹쳐 움직이는 셈이다.
환율의 영향을 막아 둔 상품도 따로 있다. 상품 이름이나 설명에 그 표시가 붙어 있다.
국내에 상장된 금 ETF는 상품마다 방식이 다르다. 금을 실제로 보유하는 상품도 있고, 값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계약을 쓰는 상품도 있다.
뒤쪽이라면 다음 절의 이야기가 그대로 적용된다.
원자재는 왜 값만 따라가지 않을까?
원유나 구리, 농산물처럼 실제로 쓰이는 물건을 원자재라고 한다.
경기가 살아나면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값이 오르고, 공급이 끊기면 쓰임과 상관없이 값이 뛴다.
다만 한 덩어리로 묶기 어려운 무리다. 원유와 구리와 곡물은 각자 다른 사용처를 보고 움직인다.
그런데 이런 상품에는 초보가 잘 모르는 자리가 하나 있다.
펀드가 원유를 실제로 사서 쌓아 둘 수는 없다. 그래서 정해진 날에 정해진 값으로 사기로 한 계약을 대신 쓴다. (이른바, "옥수수가 갑니다. 감자가 가요!")
그 계약에는 기한이 있어서, 기한이 오기 전에 다음 계약으로 옮겨 타야 한다.
이때 옮겨 탈 다음 계약이 지금 것보다 비싼 경우가 있다.
그러면 같은 양을 유지하는 데 돈이 더 든다. 이 일이 반복되면 원유 값이 제자리여도 상품의 값은 조금씩 깎인다.
물건의 값이 그대로여도 옮겨 타는 값이 쌓이면 내 것은 줄어든다.
반대로 다음 계약이 더 싼 구간에서는 이득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내가 원자재 상품에서 놀랐던 것이 이 자리였다.
뉴스에 나온 원유 값과 내가 보유한 상품의 값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데, 나는 상품이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러니 원자재를 볼 때는 그 물건의 값과 상품의 값을 같은 것으로 놓지 않는 편이 낫다.
둘 사이에 옮겨 타는 자리가 하나 끼어 있다.
그럼에도 이쪽을 보는 이유는 있다.
물건 값이 전반적으로 오르는 시기에는 주식이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많은 반면, 원자재는 그 오름을 보고 움직이는 쪽에 있다.
다만 방금 본 자리 때문에 그 오름을 그대로 받지는 못한다. 방향이 같은 편이라는 정도로 보는 것이 맞다.
그래도 주식과 다른 것을 보고 움직인다는 말이 여기서는 꽤 잘 들어맞는다.
채권은 왜 금리가 오르면 값이 내릴까?
채권은 나라나 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정해진 이자를 받기로 한 증서다.
주식과 달리 얼마를 받을지가 처음부터 적혀 있다.
빌려주는 상대가 나라인지 회사인지에 따라 성격이 갈린다. 회사 쪽은 이자를 더 주는 대신 못 갚을 걱정을 같이 안는다.
여기서 초보가 가장 많이 걸리는 자리가 나온다. 금리가 오르면 이미 갖고 있던 채권의 값은 내린다.
여기서 말하는 금리는 뉴스에 나오는 기준금리 자체가 아니라, 지금 새로 사는 비슷한 기간의 채권이 주는 이자다.
숫자를 넣어 보면 간단하다.
내가 가진 증서는 연 3퍼센트를 준다. 그런데 새로 나오는 증서가 연 5퍼센트를 준다고 하자.
내 것을 사겠다는 사람은 값을 깎아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자가 적힌 종이의 값은, 새로 나오는 종이의 이자에 따라 정해진다.
빌려준 기간이 길수록 이 영향이 커진다. 남은 기간이 길면 낮은 이자를 더 오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채권이라도 기간이 짧은 쪽은 덜 움직이고 긴 쪽은 크게 움직인다.
금리가 내릴 때는 이 일이 반대로 벌어진다. 이미 갖고 있던 증서의 값이 올라간다.
그리고 채권 ETF에는 알아 둘 것이 하나 더 있다.
채권 하나를 직접 보유하면, 빌려 간 쪽이 약속대로 갚는다는 전제에서 기한까지 기다려 적힌 돈을 받을 수 있다. 채권 ETF는 대개 그렇지 않다.
기한이 다가온 것을 팔고 새것을 사는 일을 계속하기 때문에 기다리면 돌려받는 자리가 없다.
기한을 정해 둔 상품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채권이니까 원금은 지켜지겠거니 하고 접근하면 어긋난다.
대신 열려 있는 자리가 하나 있다. 계속 새것을 사기 때문에, 이자가 올라간 구간을 지나면 상품이 받는 이자도 함께 올라간다.
그 이자가 내린 값을 시간을 두고 채워 준다. 다만 어디까지 채워질지는 그 뒤의 사정에 달려 있어 미리 알기는 어렵다.
그리고 채권 ETF라고 다 같은 성격인 것도 아니다.
기간이 긴 채권을 보유한 상품은 주식만큼 크게 움직이는 구간이 있다. 회사에 빌려주는 쪽은 경기가 나빠질 때 주식과 같은 방향으로 밀린다.
주식보다 덜 흔들리는 쪽에 있는 것은 맞지만, 어떤 채권을 보유한 상품인지에 따라 갈린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왜 섞을까?
이유는 하나다. 같은 날 같은 이유로 다 같이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천만 원이 전부 주식인데, 주식이 빠진 그날 백만 원이 줄었다고 하자.
절반만 주식이고 나머지 절반이 그날 그대로였다면, 같은 날 줄어드는 것은 오십만 원이다.
이것으로 손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견딜 만한 크기로 줄어든다.
내가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가 대개 이 크기에서 갈린다.
버티지 못하고 판 자리에서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팔기 전이라고 손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 뒤에는 되돌릴 자리가 사라질 뿐이다.
버틴다고 반드시 제자리로 오는 것도 아니다. 섞어 두는 것은 계획에 없던 매도를 줄이는 쪽이지 회복을 약속하는 쪽이 아니다.
섞는 이유는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대가도 분명하다. 주식이 크게 오르는 해에는 전부 주식인 쪽보다 덜 오른다.
덜 빠지는 것과 덜 오르는 것은 같은 장치의 앞뒤다.
얼마나 섞어야 하는지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빠지는 것을 보고도 팔지 않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어, 사람마다 다르다.
한 번 정해 두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잘 오른 쪽이 커져 처음 정한 비율이 어긋난다.
그 비율을 다시 맞추는 일은 그것대로 따로 정리할 이야기다.
그리고 늘 통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날에는 팔 수 있는 것부터 파는 사람이 많아, 성격이 다른 자산이 함께 빠지기도 한다.
내가 겪은 날이 그런 날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때는 애초에 섞어 두지도 않았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무엇을 확인해야 했는지는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비율을 정하기 전에 종류를 먼저 세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몇 대 몇으로 나눌지는 그다음 문제다.
종목을 나누는 것과 종류를 나누는 것
지금도 내 계좌의 대부분은 주식 쪽이다. 그 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목록을 보는 방법은 달라졌다.
-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은 따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 금은 벌어 주지 않고, 이자가 높아지면 불리해진다
- 원자재는 물건의 값과 상품의 값 사이에 옮겨 타는 자리가 있다
- 채권은 금리가 오르면 값이 내리고, ETF에는 기다리면 돌려받는 자리가 없다
종목을 여러 개 갖는 것과 종류를 여러 개 갖는 것은 다른 일이다.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 보면, 그날 확인한 것은 하나였다.
나눠 놓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같은 종류였다.
그러니 오늘도 하나만 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내 계좌의 상품들을 종목이 아니라 종류로 한 번 묶어 보는 것.
주식은 주식끼리, 주식이 아닌 것은 따로 세어 보면 된다. 세어 보는 데 몇 분이면 된다.
업종이 아니라 종류로 묶는 것이 요령이다. 반도체와 은행은 다른 업종이지만 같은 종류이고,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도 그렇다.
묶을 때는 이름이 아니라 그 상품이 보유한 것을 본다.
이름에 원자재가 붙어 있어도 실제로는 그 물건을 캐는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상품이 있다. 그런 상품은 원자재보다 주식 쪽에 가깝게 움직인다.
무엇을 보유하는 상품인지는 구성 종목 목록에 적혀 있다.
줄이 하나뿐이면 그것이 지금 내 분산의 실제 모습이다.
그 상태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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